[眞永] 차원계
도담 | 眞永 고장홍 법사
차원계
3차원?
4차원?
3차원에는 물질이 존재하다 보니 물질 중심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합니다. 4차원에는 물질이 존재하지 않기에 생각, 말, 행동 등 모든 것이 다릅니다. 이렇게 서로 다른 세상의 차원을 흔히 차원계라고 합니다.
차원계란 일반적으로 이해되고 인식되는 것은 아니나 이를 간접적으로 느껴볼까요?
우리가 보이는 물질을 최대치까지 분리해가다 보면 안 보이는 단위까지 갑니다. 하늘의 구름도 마찬가지로 최대로 분산시키면 사라져 버립니다. 다시 모이면 구름이 됩니다. 공기 중에 수(水) 기운이 차가운 기운을 만나면 물은 얼어버립니다. 안 보이는 수(水) 기운이 보이는 얼음으로, 눈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안 보이는 4차원과 보이는 3차원은 공존합니다.
다만 우리가 3차원에서 생각하는 습관이나 감각으로는 4차원을 볼 수도 느낄 수도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자연계에는 이미 차원들이 동시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즉 공존하고 있습니다. 우주에 있는 모든 물질, 비물질이 다 그렇게 공존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생각의 의식이 깊어지고 확장되어 걸림이 없는 경지에 들어가면 4차원의 공존된 세상에서 새로운 가치관을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3차원의 생활 속에서는 무겁다, 가볍다, 깊다, 얕다, 크다, 작다 하는 등의 기준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하지만 4차원은 강하고 약하고가 아니라 물질의 질적 기운이 그 기준이 됩니다. 기운이 얼마나 뭉쳐 있는지, 응집되어 있는지, 흩어졌는지, 모여 있는 지.. 와 유사한 느낌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단어적 표현들이 주는 그런 느낌과 똑같지는 않습니다. 질감 또는 농도가 중요하게 생각되는 것만으로 이해하기엔 부족할 것입니다.
3차원에서는 우리가 모든 생활에서 기준으로 삼는 시간이 중요합니다.
4차원에서는 시간보다는 질량이나 농도가 더 중요하다고 표현해 볼 수 있겠습니다.
죽음이라는 것이 본래 우리가 왔던 곳으로 돌아가는 것이라 합니다. 무(無)에서 유(有)가 생성되는 것처럼 생명은 무(無)에서 유(有)로 탄생합니다. 그리고 유(有)는 다시 무(無)로 돌아갑니다. 안 보이는 것에서 보이는 것으로, 보이는 것에서 다시 안 보이는 것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보이든 안 보이든 모두 존재하는 것이지 존재가 아닌 것은 아닙니다.
무(無)이지 무(无)는 아닙니다.
무(无)는 아예 없는 것이고, 무(無)는 유(有)라는 상대가 있는 무인 것입니다. 그래서 3차원과 4차원의 틀과 한계를 벗어버리면 사람이 만든 죽음이라는 단어의 굴레도 벗어버리게 됩니다. 한계를 넘어서고 경계를 넘어서게 됩니다.
이 경계의 열쇠가 3차원의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는 것이 우리 몸과 신체입니다.
우리 몸을 잘 다스리고 갓난아기처럼 돌아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숨쉬기 공부를 꾸준히 해야 합니다. 정기신(精氣神) 순환원리의 수련을 오랜 기간 지속하면 차원계의 경계를 이해하고 접근하기 시작하게 됩니다.
정기신 삼보(三寶)의 숨쉬기 수련은 차원계를 초월하는 관문의 열쇠이자 통로이기도 합니다.
수련 속에서 거치게 되는 중요한 과정이 됩니다. 오랜동안 여러 시대와 장소를 거쳐오면서 여러 사람들이 수련을 해오던 그 과정에서 수천가지의 결과가 나와 이론도 만들어내고, 사상도 만들어내고, 이념도 만들어내고, 종교와 철학도 발생이 된 것입니다.
수련을 바르게 해 나가다 보면 공부의 길이 무수히 열립니다. 그 길 역시 이미 잘 닦여 있는 탄탄한 길이되니, 그것이 바로 숨쉬기 수련입니다. 그래서 예부터 산중 수행의 기본은 숨쉬기 공부이고 다른 공부를 하였다 하더라도 나중에 반드시 하게 되는 공부가 숨쉬기 공부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