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眞永] 우아합일(宇我合一) 자연합일(自然合一)
도담 | 眞永 고장홍
우아합일(宇我合一)
자연합일(自然合一)
위는 각각 “우주와 내가 하나가 된다.”, “자연과 내가 하나가 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수련 세계에서 흔히 쓰이는 중요한 말들입니다.
인간은 소우주로서 대우주와 협상하여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주고받으려는 협상보다 우선 대우주의 리듬에 내가 맞추어 하나 되게 동화하는 것이 가장 좋은 길이라 생각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치 우리의 소중한 재산을 은행에 믿고 맡기듯이 대우주를 믿고 나를 송두리째 다 맡겨야 합니다.
대우주에 나를 맡긴다는 것이란 무엇일까요?
여기서 우주 속에서의 나라는 생명체의 존재와 의미를 알 수 있으면 맡긴다는 의미도 감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우리는 대우주를 대자연이라 부르며 살아갑니다. “자연”은 스스로 자(自)자와 그럴 연(然)자를 씁니다. “스스로 그렇게 되어있다, 혹은 되어간다.”는 뜻입니다. 사람이 만들거나 조작한다거나 하면 이는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인공적이라고 합니다.
사람이 태어남도, 살아가는 과정도, 죽음도 모두 자연적입니다.
하지만 병고의 아픔은 자연적이지 못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대부분 인간의 욕심에서 병고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인위적으로 어떤 것(일)이 무리 되거나 부족하거나 하여 적당하지 못하면, 자연의 이치에 따라 보이지는 않지만, 서서히 탈이 나기 시작합니다. 나무에 물을 너무 많이 주면 뿌리가 썩고, 안 주면 말라버리는 이치와 같습니다.
사람의 육신은 스스로 욕심을 내며 생존하게 되어 있습니다.
정신이 육체를 관리하고 통제하지 못하면 사람은 육체 중심으로만 살아가게 되고, 욕심이 발동하여 목적과 목표가 생기고 무리하게 되어 많이 소유하게 되고 항상 과부하가 걸려 지치고 힘들게 됩니다. 식사량 역시 많이 먹어 병이 나고 부족하여 병이 납니다.
하지만 만사가 적당하게 자연의 원리와 흐름에 맞으면 탈이 없게 됩니다. 그러면 순리대로 적응하여 지속할 수 있지만, 아무리 돈이 많고 먹거리가 많고 권력이 있어도 과욕하면 몸과 마음에 탈이 나고 불신이 되어 가정과 기업에마저도 위기로 다가오게 됩니다.
대우주와 대자연은 우리가 속해 있는 공간입니다.
이 공간 속에 우리가 있습니다.
이 공간은 살아서 움직입니다.
살아 움직이는 모든 것에는 자기만의 리듬이 있고, 그것이 규칙으로 나타납니다. 우리는 어머니 자궁 속에 있는 태아처럼 이 공간 안에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속해 있는 이 공간의 흐름을 이해하고 규칙을 알아채고 원리를 터득하면 같은 공간 안에서도 삶을 살아감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 공간은 사리사욕이 없는 무욕의 공간입니다.
무욕이 기본으로 이루어진 공간입니다.
목적 목표 없이 무심한 채, 수천 년, 수만 년을 살아내는 공간입니다. 이 공간 안에는 오직 모든 생명을 살려내고 키워내는 공심과 공욕만이 있을 뿐입니다.
매일, 매년, 수천 년, 수만 년을 같은 원리와 이치대로 환경을 만들어 내고 반복하며 생성사멸의 법칙을 반복하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가 속한 이 공간입니다. 우리가 공심과 공욕을 가지고 살면 이 공간에서 무리하지 않고 잘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리사욕이 발동되면 공간과 엇박자가 나서 탈이 나기 시작합니다.
오늘날의 지구촌 사회를 돌아볼까요?
개인이나 사회나 탈이 나서 헤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방법을 알면서 욕심을 놓지는 못하고 사욕을 품은 채 해결하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스스로 깊은 골짜기로 떨어지는 격을 만들고 맙니다.
이러한 원리와 이치를 알고, 보다 공심•공욕의 삶을 살아가는 인생길, 이 길을 적극적으로 이해하고 본격적으로 공부해 나가고 실천하는 행위가 수련입니다. 곧 단전행공법인 것입니다.
숨쉬기로 자연의 리듬을 찾아내어 함께하고, 자연의 순행법칙과 운동의 흐름대로 내 몸을 움직여주는 일을 반복하면서 우주의 정신과 나의 정신을 교감하려 노력하는 자세가 곧 밝돌법의 밝 받는 방법의 단전행공 수련법인 것입니다.
이 우주 공간에 살고 있는 우리 사람들이 이 공간의 법칙을 활용하여 보다 나은 삶을 살아가는 것은 좋지만 과하게 욕심을 부려 파괴하고 단절시키며 자연 질서를 무너뜨리는 행위는 스스로 자멸의 길을 선택하는 격일 뿐입니다.
이런 위기감을 깨우치고 알아채는 많은 현대인은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자연 복원 운동, 다양성 운동, 인간 존엄성과 바른 사회성 회복을 위한 다양한 운동들을 하고 있지만, 내면의 수양과 수련이 없이는 지속가능한 변화로 거듭나기는 어려울 수 있을 것입니다.
인간 내면의 정신은 단순히 우리 마음과 정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대우주 자연과 연결되어 있는 소통의 창구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창구에 변화를 주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공부하고 체득하며 사회생활에 적응해 나가듯이 우주공간에 살아가는 수련을 체득하며 이 공간에 적응하는 학습이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자연에 나를 맡긴다는 것은 마치 자연의 음악 소리에 자신이 작곡한 노래를 부르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